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라 적당히 조용한 데를 찾다가 건대 쪽 가게로 감.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펼친 시간은 길지 않았음.
누군가 3인 세트를 짚었고 거기서 주문이 끝난 것. 하이볼 한 병을 추가한 게 전부였고, 계산할 때까지 항목별 값을 따로 떠올린 사람이 없었음.
핵심 요약 ·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3인 보양세트 하나와 하이볼 한 병으로 주문을 끝냄. 원조닭전골·통돼지후라이드·닭고기육전·흑임자 오이무침이 한 번에 올라왔고, 계산할 때까지 항목별 값을 따로 떠올린 사람이 없었음. 묶음 상품의 항목별 가격 투명성을 다섯 번의 실험으로 본 2022년 연구에서 사람들이 오히려 덜 투명한 패키지를 골랐다는 결과를 두고, 세트가 편한 이유와 그 편함이 가리는 것을 단품 주문과 표로 비교함. 세트를 피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합계만 남는 자리에서 뭘 놓치는지 한 번은 보자는 정리임.
세트 이름 하나로 끝난 주문

테이블 간격이 넓고 조명이 낮은 집이라 말소리가 겹치지 않았음. 그런 자리에서 메뉴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 자체가 일이 됨. 세트는 그 일을 한 번에 지워준 셈.
단품으로 갔으면 순서가 달랐을 거임. 메인을 정하고, 튀김을 넣을지 말지 보고, 사이드를 하나 더 넣을지 셋이 상의함. 고를 때마다 값이 옆에 붙어 있으니 그때그때 계산이 들어감.
상에 올라온 네 가지

세트 구성은 닭전골과 통돼지후라이드, 닭고기육전, 흑임자 오이무침임. 전골이 끓는 동안 튀김을 먼저 집었고, 오이무침은 기름진 걸 먹다가 손이 갔음. 먹으면서 셋 다 했던 말이 이 조합 괜찮다는 것.
근데 그 말은 구성에 대한 평가지 값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음. 값은 이미 한 덩어리로 넘어가 있던 셈.
나중에 떠올려보니 기억에 남은 것도 구성이었음. 0원 문구 한 줄을 보고 들어간 날에는 그 한 항목만 선명했는데, 세트는 반대로 개별 항목이 전부 흐릿해지는 쪽임.
| 비교 항목 | 단품으로 시킬 때 | 세트로 시킬 때 |
|---|---|---|
| 고르는 횟수 | 메인·튀김·사이드로 세 번 이상 | 세트 이름 하나로 한 번 |
| 값이 보이는 단위 | 항목마다 따로 | 합계 하나 |
| 빼기 쉬운가 | 안 시키면 그만 | 구성에서 빼기 어려움 |
| 나중에 남는 기억 | 비싸다 싶던 한 접시 | 조합이 괜찮았다는 인상 |

항목 가격이 안 보일 때 사람들이 고르는 것
2022년 Frontiers in Psychology에 실린 여행 패키지 실험은 묶음 상품의 항목별 가격을 보여줄 때와 감출 때를 다섯 번의 실험으로 비교했음. 결과는 반대 방향이었던 것. 사람들은 항목별 값이 덜 드러난 패키지를 더 선호했고, 관여도가 낮은 쪽일수록 그 차이가 컸음.
여행 상품 얘기라 술자리 세트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음. 그래도 겹치는 부분은 분명함. 항목별 값이 보이면 사람은 하나씩 따지기 시작하고, 따지는 일은 피곤하다는 것.
탈러와 선스타인은 『넛지』(리더스북)에서 사람들이 기본값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고 정리함. 메뉴판에서 세트는 사실상 기본값 자리에 놓여 있었음. 고르기 쉬운 자리에 있고, 빼기는 번거롭고, 안 고르면 대신 세 번을 고민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세트가 나쁘다는 결론으로 가지 않음. 무료배송 기준을 맞추려고 뭔가를 더 담던 것과 달리, 세트는 안 쓸 걸 사게 만드는 구조가 아님. 다만 합계만 남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뭐가 비쌌는지를 나중에도 모른다는 게 차이였음.
자주 묻는 질문
Q. 세트가 단품보다 싼 거 아님?
대개는 그렇게 설계돼 있음. 다만 싼지 여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싸다는 믿음과 싸다는 확인은 다른데, 세트는 확인 단계를 건너뛰게 함.
Q. 그럼 매번 항목별로 따져야 함?
모임 자리에서 그러면 분위기가 먼저 상함. 내가 정한 건 두 번에 한 번만 계산서를 다시 보는 정도임. 단위당 값을 재는 습관은 장보기에서 먼저 붙였던 것이라 술자리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음.
오늘 해볼 것
다음에 세트를 시키면 계산서가 나왔을 때 구성 중 하나만 골라 그 값을 짐작해보면 됨.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합계 말고 다른 숫자를 한 번 떠올려보는 게 목적임. 결제 수단에 따라 이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카드와 현금을 나눠 써본 기록에, 장바구니에 넣고 기다려본 쪽은 48시간 숙성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