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셋이 저녁 먹을 데를 찾고 있었음. 번화가라 선택지는 많은데 편히 앉아 한 끼 먹을 데는 의외로 안 보였던 것.
그러다 한 가게 입구에서 소주 0원 이벤트 문구를 봤음. 그 자리에서 들어감. 나중에 계산서를 보면서 0원이 어디에 붙어 있었는지를 다시 봤는데, 3만 원 이상 무료배송 때문에 더 샀던 일과 같은 구조였음.
핵심 요약 ·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셋이 저녁을 찾다가 입구의 소주 0원 이벤트 문구를 보고 들어감. 평양냉면을 중심으로 평양만두 반접시와 만두지짐이 반접시를 곁들였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는데, 0원은 그 한 병에만 붙어 있었음. 0원이 결정을 앞당기는 구조를 가격 프레이밍 연구와 거래 효용 개념으로 뜯어보고, 0원 옆 항목의 값을 먼저 보는 규칙으로 옮겨봄.
입구에서 결정이 끝난 과정

평소 같으면 메뉴판을 보고, 가격을 보고, 일행 눈치를 보고 들어감. 그날은 그 과정이 없었음. 0원이라는 글자가 결정을 대신했던 것.
일행과 저녁을 편하게 보내기 좋겠다는 판단은 있었음. 매장이 넓고 셀프바가 있어서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던 것. 근데 순서가 거꾸로였음. 0원을 보고 들어간 다음에 판단이 따라왔던 것.
0원 옆에 붙어 나온 주문

주문은 단출했음. 평양냉면을 중심으로 평양만두 반접시와 만두지짐이 반접시를 곁들였고, 소주 한 병을 셋이 나눠 마심.
0원은 소주 한 병에만 붙어 있었음. 냉면도 만두도 지짐이도 정가였고, 그 항목들이 계산서의 전부였던 것. 이벤트 때문에 들어갔지만 이벤트로 아낀 건 한 항목이었음.
| 주문 | 0원 여부 | 주문한 이유 |
|---|---|---|
| 소주 한 병 | 0원 | 입구 문구 |
| 평양냉면 | 정가 | 저녁이니까 |
| 평양만두 반접시 | 정가 | 냉면 옆에 하나 더 |
| 만두지짐이 반접시 | 정가 | 소주 안주 |
표를 그려보니 0원이 데려온 주문이 보였음. 만두지짐이는 소주가 있어서 시킨 것이고, 소주는 0원이라서 시킨 것. 0원 한 줄이 정가 한 줄을 끌고 온 셈이었음.

0원이 결정을 앞당기는 구조
마와 동료들이 2018년 Frontiers in Neuroscience에 낸 가격 프레이밍 실험은 두 개 묶음 상품의 총액을 거의 같게 두고 끼워 파는 쪽을 0원으로 표시한 조건과 둘 다 할인가로 표시한 조건을 비교함. 총액 차이는 최대 0.1위안이었는데, 0원 조건에서 구매율이 높고 반응 시간이 짧았고, 뇌파에서는 긍정 감정과 관련된 진폭이 커졌다고 씀.
반응 시간이 짧아졌다는 대목이 그날 입구와 겹쳤음. 0원은 값을 깎는 게 아니라 결정을 빠르게 만드는 쪽으로 작동했던 것.
리처드 탈러는 『행동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에서 거래 효용이라는 개념을 씀. 같은 물건이라도 얼마나 좋은 거래였는지가 따로 만족을 만든다는 것. 해변에서 마시는 맥주를 고급 호텔에서 사 오면 더 비싸도 괜찮다고 느끼는 실험이 거기 나옴. 0원 소주는 거래 효용을 최대로 만든 항목이었고, 그 만족이 정가 항목까지 덮었다고 봄.
0원 옆 항목의 값을 먼저 보는 규칙
그날 이후로 0원이나 무료라는 글자를 보면 그 옆 항목의 값을 먼저 봄. 0원 자체는 볼 게 없음. 어차피 0이니까.
현금만 되는 가게 앞에서 멈칫했던 1,000원과 반대 방향의 경험이었음. 그때는 작은 돈이 크게 느껴졌고, 이번에는 0원이 나머지를 작게 보이게 함. 지불 수단이나 표시 방식이 바뀌면 같은 돈이 다르게 보인다는 건 카드 결제가 현금보다 덜 아픈 이유에서 이미 봤던 부분.
마트에서 100g당 가격만 보고 장을 본 두 주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임. 눈에 띄는 숫자를 지우고 옆 숫자를 봄. 그날 을지로에서 옆 숫자를 봤어도 들어갔을 것 같긴 함. 다만 만두지짐이는 안 시켰을 것.
자주 묻는 질문
Q. 0원 이벤트는 그냥 이득 아님?
소주 한 병만 보면 이득이 맞음. 근데 그 한 병 때문에 들어간 가게에서 정가 항목 세 개를 시켰고, 그중 하나는 소주가 없었으면 안 시켰을 항목이었음. 이득인지는 계산서 전체로 봐야 알 수 있었던 것.
Q. 그럼 0원 문구는 피하는 게 맞음?
피할 필요는 없음. 들어가되 옆 항목 값을 먼저 보면 됨. 그날도 냉면과 만두는 후회가 없었고, 문제는 0원이 결정을 너무 빠르게 만든 순서였음.
오늘 해볼 것
오늘 무료나 0원이라는 글자를 만나면 그 옆에 붙은 항목의 값을 한 번 읽어보면 됨. 그게 전부임. 장바구니에서 같은 걸 해보고 싶으면 이틀 묵혔다 사기 넉 주 기록이 이어지고, 방송이나 문구에 끌려 들어갔던 다른 날은 방송에 나온 그 집을 굳이 찾아간 심리에 있음.